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는 2006년 9월 26일 출범했으나, 각료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참의원 선거 패배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2007년 8월 27일 단행된 내각 개조에도 불구하고, 각료들의 비리, 테러 대책 특별 조치법 연장 난항 등의 문제로 아베 총리는 2007년 9월 12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이로 인해 내각은 총사직되었고, 아베 신조는 1년의 짧은 총리 재임 기간을 기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07년 일본 - 라이브 어스
라이브 어스는 케빈 월과 앨 고어가 주도하여 2007년 7월 7일 7개 대륙에서 열린 대규모 콘서트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전 세계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한 프로젝트로, "S.O.S." 캠페인을 통해 개인의 소비 습관 변화와 기업 및 정치 지도자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 2007년 일본 - 후쿠다 야스오 내각
후쿠다 야스오 내각은 아베 신조 총리 사임 후 출범한 일본 내각으로, 정치 불신 해소와 정책 과제 해결을 목표로 했으나 여러 논란과 민주당과의 대연립 구상 실패 끝에 후쿠다 총리의 사임으로 막을 내린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부자 총리 내각이다. - 아베 신조 - 벚꽃을 보는 모임 문제
아베 신조 내각이 주최한 '벚꽃을 보는 모임' 행사에서 예산 및 참가자 수 급증, 정치적 사유화 의혹, 전야제 비용 처리 문제, 초청자 명단 파기 등의 논란이 발생하여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는 사건이다. - 아베 신조 -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총리 주도하에 외교 및 안보 정책 중앙 집중화를 목표로 2013년 설립된 내각의 비상근 기구로,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주요 안보 정책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관저 주도의 의사결정과 군사력 강화에 대한 우려 등 논란도 있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제3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된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부 내각으로, 차기 총리 후보들을 포함한 새로운 각료들이 임명되었으며, 행정 및 의료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교육, 헌법, 형법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개조) | |
---|---|
내각 정보 | |
내각 이름 |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 |
대수 | 90 |
수상 이름 | 아베 신조 |
성립 연도 | 2007년 |
성립 월일 | 8월 27일 |
종료 연도 | 2007년 |
종료 월일 | 9월 26일 |
여당 | 자유민주당 공명당 |
명단 | 내각 명단 (일본 총리 관저 웹사이트) |
![]() |
2. 출범 배경
2006년 9월 26일에 출범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은 출범 직후부터 각료의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정치자금 문제, 사회적 격차 등의 영향을 받아 지지율이 하락했다. 결국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며 크게 패했다. 이로 인해 내각의 진퇴가 주목받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내각을 지속시킬 의향을 천명했다.[1]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은 출범 직후 각료들의 문제, 연금 기록 문제, 정치자금 문제, 사회적 격차 심화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2007년 7월 29일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은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며 크게 패했다.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내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초 9월 초순으로 예정되었던 내각 개조는 모리 요시로 등의 압력으로 8월 27일로 앞당겨졌다.[1] 아베 총리는 8월 하순 해외 순방 전에 이미 새 내각 구상을 거의 완료했다고 밝혔다.[2]
자유민주당
당초 개조는 9월 초순에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8월 27일로 앞당겨졌다. 아베 총리는 8월 하순 해외 순방 전에 “이미 새 내각의 구상은 거의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2006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발족 직후부터 복수의 각료에 의한 부적절한 발언과 '정치와 돈' 문제, 엉성한 실태가 드러난 연금 기록 문제, 고이즈미 개혁의 폐해라고 불리는 격차 사회 심화 문제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베의 대응이 매번 큰 주목을 받았다.
2007년 7월 29일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유민주당·공명당 연립 정권은 역사적인 참패를 겪었다. 특히 자민당은 당 창립 이후 유지해온 참의원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빼앗겼다. 이에 따라 자공 연립 정권은 참의원에서 소수 여당으로서 '교착 국회'에 대응해야 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아베 총리의 거취가 주목받았지만, 아베는 선거 다음 날 기자 회견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당 삼역·각료를 바꾸어 "인심 일신"하고, "개혁을 멈춰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나가야 한다"고 하여 퇴진을 부정했다.[2]
3. 내각 개조 과정
내각 개조 과정에서 고이케 유리코 방위대신은 이지스함 정보 누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8][9][10] 야노 테츠로 참의원 자민당 국대위원장은 입각이 유력했으나 불발되었고, 이에 대해 아베 총리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1]
스가 요시히데 총무대신은 사무실 비용 관련 의혹이 제기되어 재입각하지 못하고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총국장을 맡게 되었다. 나카가와 쇼이치는 당 삼역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카야마 타로의 후임으로 자민당 헌법 심의회장에 취임했다.
아베 총리의 속행에 비판적이었던 타니가키파는 이번에도 당 삼역 진입 및 입각에서 배제되었다. 타니가키 사다카즈 회장은 아베 정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는 집권 자민당 내 파벌 간 갈등과 아베 총리의 파벌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4. 각료 명단
(마치무라 파)자유민주당 총재
유임총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지방 분권 개혁 담당)마스다 히로야 민간 우정 민영화 담당
도주제 담당
지방·도시 격차 시정 담당첫 입각
전 이와테현 지사법무대신 하토야마 구니오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재입각 외무대신 마치무라 노부타카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 파)재입각 재무대신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재입각 문부과학대신 이부키 분메이 중의원
자유민주당
(이부키 파)국립국회도서관 연락 조정 위원회 위원 유임 후생노동대신 마스조에 요이치 참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첫 입각 농림수산대신 엔도 다케히코 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 파)첫 입각
2007년 9월 3일 면아마리 아키라 임시 대리
2007년 9월 3일 지정
2007년 9월 4일 면
경제산업대신 겸임와카바야시 마사토시 참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 파)재입각
2007년 9월 4일 임명경제산업대신 아마리 아키라 중의원
자유민주당
(야마자키 파)유임 국토교통대신 후유시바 테츠조 중의원
공명당관광 입국 담당
해양 정책 담당유임 환경대신 카모시타 이치로 중의원
자유민주당
(쓰시마 파)지구 환경 문제 담당 첫 입각 방위대신 고무라 마사히코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카무라 파)재입각 내각관방장관 요사노 가오루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납치 문제 담당 재입각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방재 담당)
(식품 안전 담당)이즈미 신야 참의원
자유민주당
(니카이 파)첫 입각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 재정 정책 담당)오타 히로코 민간 유임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저출산 대책 담당)
(남녀 공동 참가 담당)가미카와 요코 중의원
자유민주당
(고가 파)첫 입각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규제 개혁 담당)
(국민 생활 담당)
(재도전 담당)
(과학 기술 정책 담당)기시다 후미오 첫 입각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금융 담당)와타나베 요시미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국·지방 행정 개혁 담당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유임